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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27

'양직공도'서 신라ㆍ고구려 제기 발견돼 新しくあらわれた梁職貢図新羅題記

'양직공도'서 신라ㆍ고구려 제기 발견돼




今日ボクが見た風景

새로 드러난 양직공도 신라 제기

청대 문집서 찾아내..윤용구 박사 공개

"신라는 倭의 속국" 논란 예고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한국 고대사 연구의 제1급 사료 중 하나로 간주되는 양직공도(梁職貢圖)에서 영영 사라졌다고 간주된 신라와 고구려에 대한 간략한 설명인 제기(題記)가 최근 발견됐다.

특히 이번에 발견된 신라에 대한 제기에는 신라가 왜(倭)의 속국이라는 구절이 있어 이른바 임나일본부설과 맞물려 논란이 일 전망이다.

한국고대사 전공인 인천도시개발공사 윤용구 박사는 지난 20일 서강대 다산관에서 열린 신라사학회(회창 김창겸) 제107회 학술발표회를 통해 중국에서 최근 발견 보고된 양직공도 제기를 분석, 소개했다.

윤 박사에 따르면 중국학자 조찬붕(趙燦鵬)이 발굴해 올초에 소개한 양직공도 신자료는 청나라 중기 때 인물로, 그림에 조예가 깊은 장경(張庚. 1685~1760)이라는 사람이 모사(베낀)한 제번공직도(諸番貢職圖)다.


今日ボクが見た風景

양직공도 신라.고구려.백제사신도(왼쪽부터)

하지만 아쉽게도 장경이 베낀 제번공직도(양직공도)에서 각국 사신도는 없어지고, 각국별 제기만 청말 사람인 갈사동(1867~1935)이 편집한 '애일음노서화소록'(愛日吟廬書畵續錄. 1914)이라는 문집(권5)에 '청 장경 제번직공도권'(淸張庚諸番職貢圖卷)이라는 이름으로 재수록됐다고 윤 박사는 설명했다.

이 문집에 같이 수록된 장경 자신의 발문(跋文)에 따르면 애초에 장경은 산서성 노성현지현(潞城縣知縣)으로 근무하던 1739년, 이탁이라는 사람에게서 양직공도를 빌려와 5일만에 18명의 백묘(白描. 흑백) 사신도와 함께 해당 국가별 제기를 모두 베꼈다.

윤 박사는 이번에 공개된 양직공도 제기를 난징박물관 구장본(舊藏本)인 양직공도 판본과 비교한 결과, "신라와 고구려를 포함한 7개 국가의 제기는 완전히 새롭게 출현한 자료이며, 아울러 백제와 왜국을 비롯해 기존에 알려진 9개 국가의 제기도 내용에서 차이가 작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장경이 베낀 양직공도를 통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신라의 제기를 보면 신라의 국호는 사라국(斯羅國)으로 표기되며 더구나 신라가 "한(韓)에 속하기도 하고 더러 왜에 속하기도 했다. 그 나라 국왕은 스스로 사신을 보내 조빙할 수는 없다"는 기록이 나온다.

또 총 91글자로 된 이 제기는 "양 무제 보통(普通) 2년(521)에 신라왕 모태(募泰)가 처음으로 백제 사신편에 붙어 사신을 보내 표(表)를 올리고 방물(方物. 특산품)을 받쳤다. 그 나라에서는 성(城)을 건년(健年)이라 부르며 그 습속은 고려(高麗. 고구려)와 비슷하다. 문자가 없어 나무를 새겨 표시로 삼는다. 말은 백제를 거쳐야만 통할 수 있다"고 했다.

이 기록 중 모태(募泰)는 모진(募秦)을 잘못 적은 것으로 법흥왕을 지칭하며, 성을 지칭하는 신라어 건년(健年) 또한 여타 기록을 참조할 때 건모라(健牟羅)의 오류로 보인다.

윤 박사는 이 내용 중에서도 신라가 왜국에 속하기도 했다는 언급이 새롭게 드러난 대목이며,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따라 역사학계에서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今日ボクが見た風景

양직공도 백제사신도와 그 제기


토론자인 국립중앙박물관 이용현 박사는 "신라 제기의 발견은 획기적인 사건이라 할 만하다"면서 "신라가 왜에 속하기도 했다는 언급도 이 시대 동아시아 사정을 고려할 때 언젠가는 나올 수 있는 기록이 나왔을 뿐이며, 그렇다고 해서 신라가 왜의 속국이 되는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신라와 마찬가지로 이번에 새롭게 드러난 고구려 제기(총 133자)에는 후한 광무제 초기에 고구려가 사신을 파견해 조공하면서 처음으로 왕을 칭하기 시작했다는 등의 내용이 보이지만 기존에 알려진 고구려 관련 기록을 크게 보충하는 대목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이번에 드러난 백제 제기에는 기존 난징박물관 구장본 양직공도에서 보이는 백제의 요서경략설, 이른바 백제가 요서 지역을 침략해 영유했다는 기술이 없는 점이 특징으로 꼽힌다.

신라사학회 김창겸 회장은 "이번에 새롭게 드러난 신라와 고구려, 백제 제기를 기존에 알려진 관련 기록들과 자세히 비교 검토하면 새로운 사실을 많이 밝힐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 "특히 신라 관련 기록은 쟁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대목이 있어 주목을 요한다"고 평가했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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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梁職貢図」から新羅・高句麗題起が発見
2011-08-23 13:00

http://imgnews.naver.com/image/001/2011/08/23/AKR20110823082800005_01_i.jpg
新しくあらわれた梁職貢図新羅題記

青黛文集から捜し出して..ユン・ヨング博士公開
「新羅は倭の属国」論議予告

(ソウル=聯合ニュース)キム・テシク記者=韓国古代史研究の第1級資料の中の一つと見なされる
梁職貢図から永遠に消えたと見なされた新羅と高句麗に対する簡略な説明の題記が最近発見された。

特に今回発見された新羅に対する題記には新羅が倭の属国という一節があっていわゆる任那日本府説と
かみ合わさって論議がおきる展望だ。

韓国古代社専攻の仁川(インチョン)都市開発公社ユン・ヨング博士は去る20日西江(ソガン)大茶山館で
行われた新羅史学会(フェチャン、キム・チャンギョム)第107回学術発表会を通じて中国で最近発見報告
された梁職貢図題起を分析、紹介した。

ユン博士は今回公開された梁職貢図題記を南京博物館旧蔵本の梁職貢図版本と比較した結果、「新羅と
高句麗を含んだ7ヶ国の題起は完全に新しく出現した資料で、合わせて百済と倭国をはじめとして既に
知らされた9ヶ国の題起も内容で差が小さくない」と話した。(中略)

ユン博士はこの内容中でも新羅が倭国に属したりもしたという言及が新しく現れた大きな課題であり、
これをどのように受け入れるかによって歴史学界で論議が広がることがありうると付け加えた。

(以下略)

★1成立時刻 2011/08/25(木) 13:29:40.62

前スレ
http://kamome.2ch.net/test/read.cgi/news4plus/1314271878/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5224764


よく百済との関係を云々する人がいるが、新羅との関係の方が遥かに興味深い。
中国の史書では百済に関し、その元来の住民については倭人が頗る多いと記されているが、王族はツングース系の扶余であったという。
しかし新羅の場合、なんと日本列島から渡来した倭人が王になって王統をも伝え、述べ8代の王を輩出したとされる。

初代 赫居世居西干(朴氏)
*2代 南解次次雄(朴氏)
*3代 儒理尼叱今(朴氏)
*4代 脱解尼叱今(昔氏) ←倭人。丹波の国出身説が有力。
*5代 娑婆尼叱今(朴氏)
*6代 祗摩尼叱今(朴氏)
*7代 逸聖尼叱今(朴氏)
*8代 阿達羅尼叱今(朴氏)
*9代 伐休尼叱今(昔氏) 13代 味鄒尼叱今(金氏)
10代 奈解尼叱今(昔氏) 14代 儒礼尼叱今(昔氏)
11代 助賁尼叱今(昔氏) 15代 基臨尼叱今(昔氏)
12代 沾解尼叱今(昔氏) 16代 訖解尼叱今(昔氏)
..                17代 奈勿尼叱今(金氏)

そしてさらに、それ以上に興味深いのが建国時に新羅の宰相となって影の王のように振る舞い活躍した瓢公という、
瓢箪を腰に付けて船で渡来したとされる倭人で、この人物は現代の朝鮮人のアイデンティティの根幹を揺るがしかねない問題を孕んでいる。
というのも、現代の朝鮮人の姓名は"中華"への服属意識を如実に表す、漢字/漢字音を用いた姓=一字、名=二字という漢族式で、
実際の姓自体も漢族が使用するものの借用が殆どという有様だが、新羅の初代王の朴赫居世に始まる「朴」という姓だけは、
辰韓の語の「バク」という単語を借字で音写した独自の姓とされ、特殊な姓と言える。
ではこの「バク」という辰韓の語が何を意味するかと言うと、「瓢」。宰相として影の王のように振る舞った倭人の「瓢」公となんと同じ。
このことから、瓢公と朴赫居世は共に倭国から渡来した同族、あるいは同一人物であるとも言われている。
ちなみに金氏の祖は、件の、倭人である昔氏初代にして第四代新羅王脱解の治世時に、これまた件の倭人宰相瓢公が拾って来たとされている。
瓢公(あるいは朴氏も)や昔氏一族といった倭人たちが新羅建国に深く関わり、王、宰相として支えたわけです。非常に興味深いですね。
(参考文献:三国史記、三国遺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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